본문 바로가기

´″```°³о앗!~이럴수가★/기네스,호기심

화강암 뚫고 255m… ‘땅굴실험실’

《8일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소 서쪽 야산 기슭에 거대한 인공 땅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비상한 관심 속에 공개된 땅굴의 정체는 지하연구터널.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봉을 영구 처분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7개월에 걸쳐 뚫은 시설이다.》

8일 처음 공개된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지하연구시설과 그 입구(오른쪽). 깊이 90m, 총길이 255m에 이르는 거대한 이 인공 땅굴은 원전에서 나오는 폐연료봉의 영구처분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건설됐다. 넓은 화강암 지대를 이루는 우리의 여건을 고려해 지하 300∼500m 화강암층에 처분장을 짓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원자력연구소

90m 인공 땅굴의 비밀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를 옆에 끼고 차를 타고 비포장 산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자 터널 입구가 보인다. 겉보기에는 방공호 입구를 닮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길게 뚫린 터널이 나왔다.

터널은 15t 덤프트럭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 비탈진 내리막길을 따라 화강암 동굴을 180m 남짓 내려가자 작은 사거리가 나왔다.

여기부터 땅속에 스며든 방사성 물질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연구시설이다. 산꼭대기부터 이곳까지 깊이는 약 90m. 컴퓨터나 측정장치와 연결된 시추공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옆에서는 암반층의 균열과 지하수 흐름을 측정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원자력연구소 고용권 박사가 “지하수의 흐름과 성질을 측정하기 위한 장비”라고 짤막하게 소개했다.

지하수는 핵폐기물 처분기술 연구에서 중점 연구 대상이다. 지하수가 어디에 어떻게 흐르냐에 따라 폐기물처분장에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하연구시설에서 하는 연구는 대부분 지하수에 집중돼 있다.

지하수는 바위틈(균열)을 따라 흐른다. 물길과 저장탱크 역할을 하는 균열이 없다면 지하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경우 1m마다 평균 2개 정도의 균열이 나 있고 균열 10개당 한 곳에 물이 흐를 정도로 지하수가 많다.

지하수는 흐르는 깊이에 따라 성질과 성분이 다르다. 깊을수록 흐르는 양과 녹아 있는 산소량이 적고 알칼리성을 띤다. 깊이 300∼500m의 화강암층에 처분장을 짓는 이유도 지하수 흐름이 느리고 부식 가능성이 적어 안정된 조건에서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스웨덴 등 선진국들의 처분장도 통상 450m 이상 깊은 땅 밑에 들어섰다.

지하수가 땅속 바위틈에서 어떻게 확산되는지 보기 위해 연구팀은 소금과 무공해 형광용액을 쓴다. 이들 물질은 방사성 물질과 화학 성질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 대용으로 사용한다. 물과 만나면 이온으로 바뀌는 이들 물질의 움직임을 포착하면 바위틈에서 지하수가 어떻게 흐르는지 알아낼 수 있다.

한쪽에서는 화강암을 데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보통 고준위 폐기물 저장용기 내부는 연료봉이 내뿜는 섭씨 100도 안팎의 열로 뜨겁게 달궈진다. 완충제를 사용해도 용기 표면의 온도는 손을 대기도 힘들 정도로 높다.

폐연료봉 5만 t 모두 자연 상태로


발산된 열은 주변 지형에 영향을 미친다. 지하수가 이 뜨거운 열과 만나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거나 성질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구현하기 위해 연구팀은 90도의 열을 내는 히터를 바위 속에 박고 암반구조와 지하수 변화를 측정하고 있다.

지하연구시설에서 하는 연구는 폐연료봉을 그대로 저장용기에 담아 땅속 깊이 화강암에 묻는 경우를 전제로 하고 있다. 폐연료봉은 땅속 500m 깊이의 화강암층에 뚫은 구멍에서 최소 수만 년을 보관하게 된다.

연구 방향은 인공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는 쪽에 맞추고 있다. 아무리 완벽한 저장용기와 밀폐시설도 1만 년 이상 유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흡착성이 강한 제올라이트나 벤토나이트 등의 천연 광물을 이용해 방사성 물질의 확산 속도를 늦추는 연구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방사성폐기물처분연구부 최종원 부장은 “핵연료로 사용한 우라늄을 자연 상태에 가장 가깝게 되돌려 놓는 것이 최종 목표”라며, “폐기물 처분장에 들어갈 건축 재료나 구조도 인공물을 사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20개 원자로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는 각 발전소에 임시로 마련된 시설에 보관하고 있지만 2016년이면 포화 상태가 된다. 이들 20개 원자로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내놓는 폐연료봉만 5만 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고준위폐기물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건설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

그러나 일각에서 “영구처분장 건설은 곧 원자력 발전을 계속 고집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원자력연구소 박창규 소장은 “원전이 쏟아내는 폐연료봉을 영구 처분하려면 실증 연구가 꼭 필요하다”며 “오해를 없애기 위해 시설을 누구에게나 공개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