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날이 쓸쓸해 질때 / 유인숙 어느 날 마음 한가득 바람이 일어 낙엽 지는 거리로 나서면 벌거벗은 채 온 몸을 던져 습한 대지 위에 드러눕는 나뭇잎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이따금 살아가는 일이 쓸쓸해질 때나 누군가와 마음을 터 놓고 한동안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땅 위에 처연하게 나뒹구는 나뭇잎을 보며 고독한 가슴을 쓸어보리라 빛 바랜 낙엽은 말이 없어도 서로를 부둥켜안고 가만 가만히 귓속말로 유전遺傳을 전해 주는 걸 마음으로 깨달아 알 수 있으리라 한 생을 살다 문드러진 몸 그대로 누워 흙으로 돌아가는 날 나뭇잎은 삶을 이루었다 말하니 이따금 살아가는 일이 쓸쓸해질 때 낙엽 지는 거리로 나서면 다음 세대를 위해 빈자리 마련하는 나뭇잎 하나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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