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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어머니가 미국프로풋볼(NFL) 최고의 선수를 키웠다*◑
정말 이 한국인 어머니 대단하십니다.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면서 아들 생일에 자동차를 선물해주기까지...
어머니의 힘이 수퍼볼 MVP를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나는 어머니를 위해 뛴다”
미 프로풋볼리그(NFL) 플레이오프 1회전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경기가 열린 열린 지난 1월 6일(한국시각) 하인즈필드. TV카메라가 3쿼터 초반까지
17점차(7-24)로 뒤진 스틸러스의 무거운 벤치 분위기를 담고 있을 때,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파이팅을 외치는 한 선수가 눈에 띄었다. 오는 2월 하와이에서 열리는
올스타전 프로풋볼에서 아메리칸컨퍼런스 대표로 뽑힌 와이드리시버(쿼터백의 전진
패스를 받아내는 선수) 하인스 워드(29)였다.
열심히 동료들을 격려한 워드는 경기 종료 3분11초 전 스스로 터치다운을 성공시켰고,
종료 54초 전 클리블랜드 엔드존(터치다운이 인정되는 지역) 3야드 앞까지 전진하는
패스캐치를 기록해 36대33 역전승의 기틀을 마련했다.
경기가 끝나자 TV는 두 팔을 치켜들며 환호하는 이날의 히어로 워드를 집중적으로 비췄다.
검은색 피부의 워드가 이날 보여준 것은 바로 포기할 줄 모르는 한국인의 투혼이었다.
그러나 다음경기에서 피츠버그는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는 한국인 김영희(56)씨. 1975년 봄 서울의 한 잡화점에서
일하던 김영희씨는 친구와 함께 나이트클럽을 찾았다가 주한미군 2사단에서 근무하던
워드의 아버지를 만나 사귀게 됐고 결혼을 했다. 1976년 서울에서 워드를 낳은
김영희씨는 그가 생후 14개월이 되던 때 애틀랜타에 있는 부대로 전속명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곧바로 파경을 맞았다.
워드의 아버지는 영어를 모르는 김씨와 갓난아기인 워드를 남겨두고 독일로 떠나버렸다.
김씨는 세차일을 하면서 갓난아기인 워드를 먹여살렸지만 아버지는 1년 만에 불쑥
나타나 워드를 루이지애나에 있는 할머니집으로 데려가 버렸다.
경제력이 없는 김영희씨에게 양육권이 주어질 리 없었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김씨는 아들에게 모든 인생을 걸었다.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하면서 돈을 모았다. 6년 후인 1983년 여름, 김씨는 꿈에
그리던 아들과의 삶을 시작했다.
●‘아버지 폭력’ 통해 ‘어머니 사랑’ 깨달아
할머니집에서 살면서 계모를 친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워드에게 김씨와의 새로운
생활은 기쁨이 아닌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피부색, 문화적인 배경 등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다.
워드는 자신을 위해 음식을 차려주는 어머니에게 걸핏하면 화를 냈고, 욕을 퍼부었다.
“너무 부끄러웠어요. 친구들을 만날 때는 어머니가 아예 나타나지 말아달라고
얘기 했을 정도니까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요? 등교길 차안에서 의자 깊숙이 몸을 숨겼어요.
다른 친구들이 나와 어머니의 관계를 알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차에서 나와 뒤를 돌아다보니 어머니가 울고 있더라구요.”
3년을 어머니와 함께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한 워드는 1986년 여름 동안
아버지와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을 느꼈다.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어요. 아버지는 걸핏하면 나를 때리곤 했죠.
여름을 보내고 어머니에게 돌아갈 때 생각했어요. 아 바로 이분이 나의 어머니다,
그냥 아버지에게 나를 맡겨두고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될 텐데 어머니는
나를 위해 인생을 바치고 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해줬던 어머니에게
내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했던가.”
●대학 졸업성적 ‘평균 A학점’
그때부터 워드는 ‘모범생’으로 변신했다. 어머니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청소나 빨래,
집안일은 모두 워드의 몫이었다.
동네 친구들이 하는 마약과 범죄와는 거리를 멀리 했다.
포레스트고교에 입학한 워드는 미식축구와 야구, 농구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미식축구에선 러싱과 패싱에서 총 6081야드 전진기록을 세웠고, 야구에선 평균 4할대
타격에 35도루를 기록했다. 플로리다 말린스가 스카우트 제의를 했으나 그는 고교시절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한 아버지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미식축구를 택했다. 네브라스카,
플로리다주립대, 테네시대 등 미식축구 명문의 끈질긴 입학제의가 있었지만 어머니와
가까이 살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애틀랜타에 있는 조지아대를 선택했다.
쿼터백으로 조지아대에 진학한 워드는 주전들이 걸핏하면 부상에 빠지는 팀 사정에 따라
러닝백, 와이드리시버, 쿼터백의 역할을 돌아가면서 맡았고, 모두 무리없이 소화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미대학 미식축구사상 처음으로 러싱·패싱·리시빙·킥오프리턴
등 네 가지 부문에서 모두 1000야드 돌파를 눈앞에 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경기에서 기록을 스스로 포기했다. 개인기록보다는 팀 승리를
위해서였다. 소비자 경제학을 전공한 워드는 학업 성적도 우수했다. NFL 조기 진출이
유력했지만 워드는 돈 대신 졸업장을 택했다.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맺힌다.
“고민을 많이 했죠. 하지만 어머니의 품에 졸업장을 안겨드리고 싶었어요.
어머니 집안에선 아무도 대학을 나온 사람이 없었거든요.”
워드는 대학을 평균 A학점으로 졸업, 학업 성적도 우수한 ‘아카데믹 올 아메리칸 팀’
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대학 시절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워드는 NFL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92번째로 지
명됐다. 아홉살 때 자전거를 타다 다친 왼쪽 무릎 부상 경력으로 인해 상위팀들이
그를 지명하는 데 주저했다. 당시 강팀으로 평가되던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보낸
첫해엔 벤치에 머물렀다. 쿼터백의 공중패스를 상대 장신 수비수를 제치고 받아내야
하는 와이드 리시버로선 183㎝의 키가 작아보였지만, 정확한 위치 선정과 몸싸움에
뒤지지 않는 승부 근성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서서히 빛을 발휘했다.
첫 시즌인 1998년 16경기에서 15차례 캐치·246야드 전진에 그쳤던 워드는 이듬해인
1999년 14경기에 선발출장하며 7개의 터치다운을 성공시켜 주전자리를 확보했다.
매년 전진야드 수를 늘려나간 워드는 2001시즌에 최우수 리시버의 기준인 1000야드
돌파(총1003야드)를 기록했다.
올 시즌 전 워드는 팀이 와이드리시버 진영을 대폭 보강하면서 치열한 주전경쟁을
벌여야 했다. 자신의 포지션에 대해 빌 코어 감독과 언쟁을 벌이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시즌 전에는 어깨 부상에 맹장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시즌이 개막되자
워드의 질주는 무서웠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8차례 캐치에
90야드 전진, 터치다운 1개를 기록하며 주전자리를 굳힌 워드는 11주차 테네시
타이탄스 전에선 한 경기 최다기록인 168야드를 전진했고, 2개의 터치다운을 성공시켰다.
이후 허벅지 근육통으로 고생했던 워드는 힘들어하면서도 매 경기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며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근면성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올 시즌 기록한 1329야드 리시빙 기록은 아메리칸컨퍼런스(AFC) 2위이며, NFL 전체로선
4위에 해당된다. 또 와이드리시버로서 12개의 터치다운은 AFC 1위이자 NFL 전체 2위의
기록. 그가 올스타에 뽑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어머니로부터 겸손·성실·희생정신 배워”
화려한 성공시대를 연 워드는 인터뷰 때마다 “어머니는 나의 자랑이요, 기쁨이다.
내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은 어머니를 위해서다”라고 주저없이 대답한다.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하인스
워드를 가장 팀플레이에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한다. 그럴 때마다 워드는 자신의
겸손함과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팀을 먼저 생각하는 희생정신을 한국인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어머니를 처음 안 순간부터 지금까지 사신 옷이 열 벌도 채 안돼요.
하지만 내가 나이키 신발을 원하면 나이키 신발을, 인형을 원하면 인형을 모두 사줬어요.
틈만 나면 한국에선 나보다는 자식이 먼저라는 말씀도 하셨구요. 열여섯 살 생일 때는
아침에 깨어보니 자가용이 집 앞에 있더라구요. 언제 돈을 모으셨는지도 몰랐어요.
이젠 제가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 줄 때입니다.”
그가 유명해지자 아버지가 찾아왔다. “나에겐 어머니가 전부”라며 그는 아버지를
돌려보냈다. 워드는 스틸러스 입단이 확정되자마자 자가용을 선물하는 등
15만달러의 연봉을 모두 어머니를 위해 썼다.
올 시즌전 재계약을 하면서는 조지아 맥도너에 멋진 저택을 구입했다.
최고스타 반열에 선 워드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을 보살피느라 그동안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던 어머니와 함께 모국 한국을 같이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워드는 ‘혼혈’로서 받아야 했던 냉대를 어머니의 사랑으로 극복한
또 하나의 ‘아메리칸 드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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