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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낭송시

[낭시]슬픔이 슬픔에게..........박정원 | 김연실

 


슬픔이 슬픔에게

               시- 박 정 원




슬픔에게서 갑자기 소식이 끊겼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녹음을 해놓아도

연락 한번 주질 않는다

그만큼 슬픔에게 기쁨이 있었으리라

앞으로 잘해야 한번이나 두 번쯤

먼발치에서나마 보게 된다면

몰랐던 슬픔처럼 그냥 지나치리라

그러다 세월이 흘러

지구의 한쪽을 차지하고 서로가 죽음을 맞이할 때

허물 모두 슬픔 탓으로 돌리고 딱 하나 남은 슬픔

화해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리라

그러나 누구에게나

용서하지 못할 슬픔쯤은 가지는 게 좋다

원망할 슬픔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게 좋다

절벽에 서서 저 아래 파도를 볼 때마다

행여 슬픈 사연이 넘실거린다면

당당히 바다와 맞설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어떤 여정보다 더 멀리 항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슬픔에게서 소식이 끊긴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

앞으로 잘해야 한번이나 두 번쯤 우연히 마주친다면

슬픔은 오히려 네 인생의 큰 스승이려니

기쁜 마음으로 절 한번 크게 올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