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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는 뚱뚱했다?

양귀비는 뚱뚱했다?


   오늘은 북경 한 낮의 최고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지금 블로그 바깥주인은 덥다고 침대 위에 대나무 자리를 깐다고 난리입니다. 이렇게 날씨가 더워지면 살이 너무 많아 고민인 안주인은 걱정스럽답니다.

   작년에 입던 여름옷들이 작아져서 몸에 맞질 않는 답니다. 그래도 바깥주인은 당(唐) 현종(玄宗)이 몸매가 풍만한 양귀비를 좋아했던 것처럼 안주인이 사랑(?)스럽답니다.

 

   오늘은 역대 중국의 4대 미인(西施, 貂嬋, 王昭君, 楊貴妃)중의 하나로, 한국에서도 중국 미인의 대명사로 잘 알려져 있는 양귀비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먼저, 양귀비는 春秋 戰國시대 越나라의 미인인 서시(西施), 三國志의 董卓과 呂布사이에서의 로맨스로 유명한 초선(貂嬋), 漢나라 시기의 궁녀로 匈奴(중국 고대 민족의 하나로, 북방지역에서 유목생활을 함)로 시집을 간 애국 미인인 왕소군(王昭君)과 달리 풍만한 몸매를 가진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위의 그림은 중국의 <심천 신문> 사이트인 http://www.sznews.com 에서 빌려온 양귀비의 모습입니다. 풍만한 가슴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네요. 아이, 부끄러워라~~ 

 


 

 


 
   위의 사진 속의 토우들은 양귀비의 모습을 모방한 인형들 입니다. 어떤 토우들은 심지어 40 ~ 50대 아줌마들의 넉넉함까지 갖추었군요. 너무 늘씬하고 예쁜 미녀들보다 더 정감이 가는 모습들 입니다.        

 

   양귀비(719~756년)는 본명이 양옥환(楊玉環)이고, 그 출생지가 사천(四川) 혹은 광서(廣西)지역으로 의론이 분분하답니다.

   비파(琵琶 - 중국 전통 현악기의 일종)연주 솜씨가 뛰어난 양옥환은 낙양(洛陽)에서 열린 당 현종의 딸인 함의(咸宜)공주의 결혼식에 연주자로 참여하였다가, 현종의 아들인 수왕(壽王)의 눈에 띄어 왕비(王妃)로 책봉되었답니다.

   훗날, 현종이 총애하던 무혜비(武惠妃 - 당나라 시기의 여황제인 武則天의 친척)가 병에 걸려 죽자, 고독에 빠져 있던 현종은 고력사(高力士)의 권유로 무혜비(武惠妃)를 닮은 자신의 며느리인 양옥환에게 눈길을 주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며느리와 결혼 할 수 없던 현종(당시 56세)은 양옥환이 아들과 결혼한 지 5년째 되던 해에(양옥환의 나이 22세) 양옥환을 출가(出家)시켜 여도사(女道士)로 만들고, 훗날 다시 궁궐로 불러들여 양옥환을 자신의 귀비(貴妃)로 책봉하였답니다. 그 후 현종은 양귀비에 더욱 매료되어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다가, 급기야는 안사의 난(安史之亂)이 일어나게 되지요. 결국 이로 인해 양귀비는 향년 38세로 일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일설에 당 현종은 양귀비가 뚱뚱한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답니다. 하지만 양귀비 특유의 애교와 타고난 예술적인 기질(가무에 능하고, 음악에 뛰어난)을 아주 좋아 하였답니다. 물론 양귀비 역시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와 날씬하고 예쁘게 보이는 화장술에 정성을 들였답니다.

 

   먼저, 양귀비는 뚱뚱한 살을 빼기 위해 적당한 운동을 시도 했고, 다이어트에 좋다는 중약(中藥 - 한국의 한약에 상당하는 중국의 전통 의약)을 지어 먹기도 했다지요. 그리고 기름기가 적은 담백한 음식과 채소, 과일을 즐겨 먹었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미용 과일이자 과일의 여왕이라는 "리쯔(荔枝 - 영문으로 '리치' 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요)"를 즐겨 먹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생각에 "리쯔"는 당분이 너무 많아 다이어트에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던데...아무튼 이 과일이 양귀비의 풍만한 몸매를 만드는데 일조를 한 것 같습니다.

 


 

 

   양귀비가 가장 좋아했다는 "리쯔(荔枝)"는 주로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중국의 남방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과일로, 이미 2000 여년의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답니다.

 

   장기간 보존이 불가능한 리쯔(荔枝)를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은 당시에 어떻게 그 먼 남방에서 양귀비가 사는 북방의 낙양까지 신선하게 운송이 되었을까요?

   어느 역사가의 고증에 의하면, 나무에서 딴 리쯔 열매를 운송한 것이 아니라, 열매가 달린 나무를 통째로 뽑아서 낙양까지 신선도를 유지하며 운송 했다고 하네요. 한 사람의 기호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노력과 수고를 들이다니, 정말로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입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양귀비가 리쯔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환관(宦官)인 고력사(高力士)와 관련이 있다고 하네요. 바로 고력사의 고향인 광동(廣東)지역의 특산물이 리쯔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