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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앗!~이럴수가★/기네스,호기심

전설이 된 여성 전사들

전설이 된 여성 전사들

뮬란의 실제 주인공, 중국 인민의 해방자, 왕 콩거
1777–1798. 부패한 청나라의 말년을 살았던 여걸.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으로 극심한 고생 속에 자랐음. 길거리의 거지로 생활하다가 기예단에 들어가 생계를 유지했는데 이곳에서 무술과 검술의 기초를 배움. 우연히 청나라의 관리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그는 암암리에 “백연단”이라는 반정부 조직을 키우고 있던 혁명가였음. 그의 뜻에 동조한 왕 콩거는 그와 결혼해 본격적인 무예를 익히기 시작, 백연단 최고의 검술가가 됨. 그러나 콩거의 남편은 내부 밀고자에 의해 살해 당했고, 콩거는 남편의 복수를 위해, 그리고 부패한 청나라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반란군을 이끎. 정부의 폭정에 신음하던 농민들은 너도나도 그녀의 군대에 자원했고, 콩거의 군대는 수만을 헤아리게 됨. 10대의 나이에 수만의 군대를 지휘하게 된 그녀는 청의 중소 도시들을 차례로 함락해 나갔는데, 그녀의 게릴라 전술과 용맹함은 중국 전역에 알려진다. 특히 쌍검술의 달인이었던 그녀는 말 위에서 수많은 적들을 상대로 백전백승, 살려둔 자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청의 군대는 차츰 그녀의 전술을 사전에 간파, 내부 교란 작전 등을 이용해 백연단 군대를 궤멸시켜 갔다. 결국 콩거는 최후의 일전에서 대패, 사로잡히길 거부하고 절벽 위에서 뛰어내려 21살의 나이에 불꽃 같았던 생을 마친다.

 


전설의 여자 검객, 오페라 가수, 라 모팽(La Maupin)
1670-1707. 파리 태생의 전설적인 검객이자 오페라 가수. 남자 못지 않은 체격에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모팽은 양성애자로도 유명했음. 어린 시절 호방한 아버지 아래서 글과 그림, 춤, 노래, 그리고 검술을 익혔다. 결혼을 일찍 했는데 남편을 출장 간 틈에 검술을 가르치는 선생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 한다. 그에게서 검술을 배운 모팽은 곧 스승을 능가하는 실력이 된다.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검술 시범을 보이거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운 좋게 파리의 오페라 무대에 공식 데뷔를 하게 된다. 그녀는 정규 음악 교육도 받지 못한 형편없는 가수였으나 수려한 용모에 아름다운 목소리 때문에 극장에서 계속 고용을 했던 것으로 알려짐. 모팽은 당시 파리 시내 제일의 결투가로, 남성들과의 일대일 대결에서 너무도 쉽게 이겼다. 그녀와 결투를 한 남성들은 모두 패배해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고. 한번은 시비를 걸고 결투에 응하지 않는 남자가 있었는데, 모팽을 그 자리에서 칼과 채찍을 휘둘러 시계와 담배상자를 낚아채는 절묘한 기술을 선보였다. 그녀는 또한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는데 하루는 왕족이 개최한 파티에서 아름다운 여성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이때 이 여성의 남자 친구들이 시비를 걸어오는 바람에 이들 3명과 사투를 벌였고, 3명 모두를 사망케 한다. 그러나 왕족의 특별 사면으로 그녀는 파리를 벗어나 브뤼셀에서 재혼, 비교적 안정적이고 조용한 삶을 살다 죽는다.

 

 

프랑스의 소녀 기사, 잔다르크(Joan of Arc)
1412-1431.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농민의 딸로 출생. 13살에 하느님이 보낸 3명의 천사들로부터 영국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의 구하라는 계시를 받는다. 당시 프랑스는 버건디와 연합한 영국에게 북부 프랑스 전 지역을 빼앗기고 왕권마저 박탈 당한 상황이었다. 이에 잔다르크는 머리를 깎고 남장을 한 채 프랑스 군에 들어간다. 어이없어 하는 프랑스 군 장교들을 잔다르크는 오랜 시간 끝에 설득 후, 천사를 상징하는 은빛 갑옷을 입고 군대를 지휘하게 된다. 1429년 올레앙에서 벌어진 첫 번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연이어 영국군을 격파, 잔다르크는 일약 프랑스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잔다르크의 활약으로 프랑스의 국왕 샤를 7세는 다시 왕위에 복귀하고, 잔다르크는 왕의 옆 자리에 앉는 영광을 누린다. 1430년 잔다르크는 파리 근처의 성을 사수하다 버건디의 군대에 사로잡혀 영국으로 이송된다. 이곳에서 잔다르크는 14개월에 걸친 끔찍한 재판을 받는다. 영국은 잔다르크의 신성을 조롱하기 위해 그녀를 수 차례 강간하고 욕보였고, 결국 1431년 잔다르크는 마녀로 판결 받고 화형을 당한다. (그녀에 의해 왕권을 되찾은 샤를 7세는 그녀를 구하기 위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1920년에야 명예가 회복되고 교황 베네딕트 15세에 의해 성녀로 추대된다.

 


부디카(Boudica), 로마 식민지를 섬멸한 켈틱 족의 여왕
AD 30년경 영국 켈틱 족의 하나인 Iceni 부족의 일원으로 출생. Iceni 부족의 왕이었던 프라수타구스와 결혼해 여왕의 자리에 오름. 당시 영국은 43년 로마의 침공을 받아 로마 식민지로 전락하던 중이었음. 로마 군은 60년 프라수타구스의 사후 켈틱 땅에 쳐들어 와 부족을 살육하고, 여왕인 부디카를 잔혹하게 채찍질하고 그녀의 딸들을 강간함. 땅과 재물, 왕권과 명예, 모든 것을 잃은 부디카는 복수를 다짐, 이웃 부족과 연맹을 맺고 수만 명의 강력한 군대를 결성함. 로마의 주력 부대가 북부 웨일즈 지방에 주둔했을 때, 부디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로마 식민지의 핵심부인 런던으로 진격, 1만에 달하는 군인과 시민들을 살육함. 이때 당시 부디카는 런던 시에 엄청난 규모의 불을 놓았는데, 이때 화재로 탄화된 지층이 아직까지 런던 내에서 발견될 정도로 어마어마했음. 이 소식을 들은 로마의 주력부대는 부디카의 군대가 런던에서 빠져 나오는 길목에 기다리고 있다가 8만 명에 달하는 켈틱 군사를 살해함. (이미 수적으로 유리했던 로마군은 뒤에는 거대한 숲을 등지고 앞 쪽에 협곡을 두어 전술적으로도 압도적인 위치에 있었음. 이때 죽은 로마 병사는 400명에 불과했음.) 치욕적인 패전에 부디카는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함.

 


로젠(Lozen), 아파치 부족의 위대한 여전사
생몰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1840년대 태생으로 추정. 당시 아파치 부족을 비롯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미 육군과 멕시코 정부의 잔혹한 살육, 거기에 상금을 노린 사냥꾼들에 의해 궤멸되다시피 하고 있었음. 이에 대항하기 위해 아파치 부족의 일원인 “온천(Warm Springs) 파”의 추장 빅토리오와 그의 여동생 로젠은 부족을 지휘해 약탈자들과의 전쟁을 벌임. 수적인 열세와 무기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빅토리오와 로젠은 지형을 이용한 치밀한 게릴라 전을 통해 수많은 미국과 멕시코의 군대를 궤멸시켰다. 특히 이들은 황야의 물의 위치를 미리 알아두어 적군이 주둔하는 지역의 물을 오염시키는 방법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음. 연이은 승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로젠이었음. 로젠은 공기의 흐름, 대지의 냄새와 진동을 통해 적군의 위치를 파악하는 신비한 능력으로 은신, 기습에 결정적 정보를 제공했으며, 탁월한 치유 능력으로 상처 입은 부족 일원들을 재생시켰다. 신출귀몰하며 자신들 목숨을 앗아가는 아파치들에 두려움을 느낀 미군은 이들과 평화 협정을 맺으나, 미군은 협정 후에도 배신을 계속해 빅토리오와 로젠의 부족은 다시 전쟁을 선포, 적들과 최후의 일전에 나선다. 로젠은 부족의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을 돕다가 빅토리오의 사람들과 떨어지고, 이때 빅토리오의 부족들은 미군의 협공을 받아 거의 전멸된다. 결국 로젠이 홀로 남은 부족을 이끌고 지루한 도피와 게릴라 전을 거듭한다. 끝내 탈진한 십여 명의 부족들은 추격 중인 미군에 투항하고 로젠은 수용소에 억류된다. 로젠은 미국 각지의 수용소를 떠돌다 결국 폐렴으로 50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이탈리아 중세시대 최강의 여군주, 마틸다 투스카니 백작부인(Matilda, countess of Tuscany)
1046–1115. 중세시대 이탈리아 중부 지방을 다스렸던 가장 강력했던 여군주. 황제 헨리 4세를 교황 그레고리 7세에 굴복하게 만들었던 여군주, 즉 “카노사의 굴욕”의 주인공이다. 마틸다가 태어난 당시의 이탈리아는 교황 파와 황제 파가 격한 세력 다툼을 벌이던 때로 한시도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교황 파에 속한 그녀의 집안은 황제의 군대에 맞서 싸워야 했다. 마틸다는 어린 시절부터 무예를 익혔고, 교황 알렉산더 2세의 전쟁에 어머니를 따라 출정하곤 했다. 그녀의 계부 고드프리 공작이 죽은 뒤, 마틸다는 아버지가 쓰던 검을 들고 직접 군대를 이끌며 30년간 교황 그레고리 7세를 위해 싸우며 교황의 용맹한 군사 대리인을 자처한다. 그녀는 카노사의 자신의 성에서 헨리 4세를 굴복시킨 뒤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은퇴한다. 이탈리아 중부 지역의 맹주였던 마틸다가 사라지자, 그녀가 다스리던 방대한 투스카니 영토의 소유권을 놓고 교황 파와 황제는 다시 격전을 벌인다. 두 번 결혼 했으나 자손을 낳진 않았다.